어젯밤에는 지금 쓰고 있는 <월간 진심> 3학기 1호를 진작에 보냈어야 했다. 쉬는 날이었지만 나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꾸벅꾸벅 조는 탓에, 필요한 밥만 먹고 나머지는 계속 잠을 잤다. 겨우 정신을 차린 저녁에 잠깐 만나기로 했던 지인과 근처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만나자마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심진 님, 요즘 너무 행복해 보여요!”
와하하 크게 웃으며 나는 그런가요? 하고 답했다. 그는 작년의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고 말했다. 그때의 얼굴과 요즘의 얼굴이 몰라보게 다르다고, 어떻게 지내고 있냐 물어왔다. 그가 사 온 치즈 케이크를 입에 넣을 때 빼고는 계속 말을 하거나 그의 말에 응하기 바빴다. 그런 두 시간 반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글을 써야겠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나도 모르게 엉겁결에 레터를 쓰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걸 내뱉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괜히 찔려서 말해놓고는 아차 싶었다. 내가 왜 레터를 미리 쓰지 않았는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방향이 무엇인지 말하면서 깨달았다.
지금까지 발행한 레터는 총 17편, 그동안 받은 여러 답장은 총 54편이다. 지금까지 쓴 글과 받은 글을 읽다 보면 어떤 이유에선지 자꾸 눈물이 났다. 어쩌다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 읽을 때면, 괜히 졸린 척 눈물이 마를 때까지 눈을 비볐고, 불쌍한 내 눈은 쉽게 빨개지곤 했다. 특히 내가 쓴 글을 읽지 않고서는 답할 수 없는 류의 메일을 받을 때면 계속 쓸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오픈율이 아무리 떨어져도 읽는 사람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보낸 메일을 읽고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진다면,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면, 뭔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무언가가 생긴다면, 쓰지 않을 이유 백 가지가 있어도 쓰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내가 뉴스 없는 뉴스레터, 편지 <월간 진심>을 시작한 이유이자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내가 쓰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인 이유 몇 가지만 말해보자면 우선 세상엔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쓰기를 앞두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유일 테지만, 특히 내 경우 가끔가다 “글을 정말 잘 쓰세요.”라는 칭찬을 들으면 화들짝 놀라며 부인하게 된다. 다른 칭찬은 큰 부정 없이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편인데 어쩐지 글과 관련된 칭찬만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추측건대 내가 괜찮은 글을 썼다고 느끼는 횟수보다, 좋은 글을 읽는 횟수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누군가 내 글을 읽느라 시간을 보냈는데, 그렇게 보낸 시간이 혹여 아깝다고 느껴지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망설여지기도 한다. 또한 글을 쓰는데 무진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해서, 쉬는 날이 아니면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 심지어 오늘처럼 한 달간 쓰지 않다가 쓰려고 하면, 그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을 다시 깨워야 하므로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말이다.
구구절절 써놓은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앞에 두고서 어떻게든 겨우 다시 쓰는 이유는, 읽어보고 싶다고 답한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한 주 동안 읽고 걷고 일하다가 쉬면서 떠올리는 자연스러운 단상과 마주하는 사람, 그들과 나눈 대화,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느끼는 감정, 이것들을 글자로 풀어 편지에 담는다. 그리고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당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싶은 무언가를 꺼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함을 열어둔다. 계속 하는 이유를 되새기며, 오래 쓰지 않은 근육을 풀어주듯 스트레칭하는 마음으로 1호를 써 내려간다.
지난 학기 동안 도착한 답장들을 읽으며 공통된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나 또한 비슷한 타인을 보며 감탄하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고,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걸까. 질문을 품은 채로 지하철을 타면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비좁은 2호선 지하철을 탈 때 사람들 틈에서 인상을 찌푸리다가, "어쩌면 내 옆의 사람도 추천받은 책을 읽고 혼자 조용히 우는 사람이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심야에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사색하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닐까, 맛있는 걸 먹으면 같이 사는 사람을 떠올리며 하나 더 사고, 좋은 곳을 발견하면 얼마 뒤 친구를 데려가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나가는 모든 이가 나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안전하고 따뜻한 바람이 마음에 분다.
빨간 불로 바뀐 신호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며 쯧쯧…혀를 조금 차다가, 어쩌면 저 사람 굉장히 급한 일이 있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이 다쳤다거나, 갖고 싶었던 물건을 당근하러 가는 길이라 너무 기쁜 거 아닐까.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미간에 있던 주름이 입가로 넘어오곤 한다. 그건 내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쉽게 사랑하는 방법이고, 동시에 내 모습을 비추는 행동이기도 하다. 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평소의 나는 무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니까.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무례하고 나쁘지만은 않을 테니,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말자는 조용한 다짐이기도 하다.
내가 한 주 동안 모은 것들을 고이 담아 보내는 편지는, 당신들에게 보내는 마음임과 동시에 나에게 보내는 다짐인 셈이다. 나와 타인을 부지런히 돌아보고 사랑하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잘 다듬어 꺼내보고,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것은 먼지 탈탈 털어 잘 보관하자고. 읽는 당신도 부디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학기 동안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길게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