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다문 노트북을 몇 번이나 지나쳤다. 일주일이 넘게 노트북을 열지 않았다. 매일 출근하기 전, 퇴근한 후의 일과였는데 말이다. 어떤 소식과 어떤 기록과 어떤 생각과 어떤 논의… 어떤 것들을 계속 마주해 왔는데, 신물이 났다. 어떤 출근길은 귀로 들리는 노래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해서 다음, 다음, 다음 버튼을 눌렀다. 이어폰을 빼버렸다. 이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방에 책을 들고 다녔지만 읽지 않았다. 지하철에선 손잡이를 잡고 눈을 감았다. 꾸벅꾸벅 잠들었다. 내릴 때가 되면 뻑뻑한 눈을 비비며 가야 할 곳을 향해 걸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신물이 났다.
예정대로라면 <9호>가 발행되어야 하는 날, 친구와 함께 강릉으로 떠났다.
내가 잘 모르는 어딘가에 있고 싶었다. 사람이 없는 곳. 계획도 없이 낯선 곳에 있고 싶었다. 일을 마치고 근처 기차역에서 친구를 만나 강릉으로 가는 밤 기차를 탔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갔는지 모르겠다. 그때도 꾸역꾸역 들고 갔던 책 한 권이 있었는데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었다. 소설은 내가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장르였다. 숙소에 도착한 뒤엔 알람 전부 다 껐다. 잠을 깨우는 알람부터 정신을 재우지 않는 각종 SNS 알람까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핸드폰을 놔두고 2분 거리에 있는 바닷가를 걸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숙소를 예약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거의 없는 조용한 해변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정수리가 뜨거워질 때쯤 들어와 테라스에서 책을 읽었다. 아침잠 많은 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강릉에 다녀온 뒤 남은 사진은 ‘강릉’이라고 적힌 KTX 역 간판과 숙소에서 바라본 바다 사진, 커피 마시며 바라본 나무 사진 하나씩이 전부였다. 덕분에 핸드폰 배터리가 쉽게 닳지 않는 이틀을 보낸 듯.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친구는 틈만 나면 ‘괜찮아?’하고 물어왔다. 진짜로 괜찮아서 괜찮다고 답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안 괜찮길 바라고 물어본 건가 싶을 정도로 많이 물었던 것 같다. (흠…) 생각해 보면 열심히 쓰던 일기도 멈추고, 잘 보던 책도 읽지 않고, 기대했던 국제도서전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잘못됐다는 감각보다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뿐, 괜찮지 않다거나 이상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쉬고 싶다. 그뿐이었다.
강릉에서 돌아온 날 밤에 이런 생각을 했다. 뭔가 부족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넘쳐흘러서 다 새고 있는 것 같다고.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잘 모르겠어서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빈손일 때의 내가 무엇을 쥐고 싶어할까 궁금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던 블로그도, 인스타그램도 별로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팔로워 몇천 명으로 으스대지 말자고 마음먹은 이후로는 모든 SNS가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지 오래이기도 하다. SNS 몇 개로 내가 설명되는 것도 웃기지 않나. 내가 아는 나는 바깥에서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숨 쉬고 있는데. 지금까지 타인에게 드러낸 모든 활동이 다 사라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대로라면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든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각종 SNS에 몇백 편의 글을 쓰고도 여전히 주어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게 어렵다. 내 얘기만 주야장천 쓰다 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말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편할 때도 많았지만, 최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아쉬움이 더 커졌다.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데, 글로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도 있고, 다르게 보이고 싶은 것도 있는데 이미 상대방이 판단을 마친 것처럼 보일 때면 입을 꽉 다물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피프티 피플을 무릎에 놓고 잠들었다. 그 순간은 읽지 않고 잠을 택했지만, 책은 가까이 두고 싶었다. 50명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 이틀간 고작 5명의 이야기밖에 못 읽었지만, 조금씩 꾸준히 읽고 싶다. 나는 내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타인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삶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그 영향이 크고 작은 행복과 불행으로 다가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직도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많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