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할래?”
누군가로부터 제안받을 때면 이것은 이유가 있어서 나를 찾아왔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해서 찾아온 ‘기회’라고. 얼씨구나 좋다고 답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저는 가진 게 하나도 없어요.”
이 말을 자주 했다. 그 시기 누군가가 나를 조금이라도 필요로 하는 것 같으면 고마워서 어쩔 줄 몰랐다. 지금도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뾰족히 말하기 어렵지만,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서 전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페달 굴리듯 과정을 밟아보니 눈에 보이는 장면들이 바뀐다. 밟을수록 보이는 것과 만나는 사람이 다양해진다. 직접 밟아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경험은 어떻게든 나에게 도움이 됐다. 매번 딱 알맞은 일이 찾아왔다기보단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충할 거라면 안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 인사 잘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하면 중간은 간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뭘 해도 중간 이상으로 넘어가기 벅차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어쩌면 일이 아니라 내 선택에 문제가 있 는게 아닐까 하고.
이렇게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최근에 봤던 영상을 본 뒤 하나로 모였다. 유튜브 채널 MoTV의 <웃음 가득 모빌스그룹 3.0 선포식> 이라는 영상이다. 그들은 3.0 업데이트 소식을 알리며 내부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디렉터 모춘은 이렇게 말했다.
“일 얘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이거야. '왜?' 이걸 놓치면, 평생 남의 따까리만 하다가 끝나. 진짜 프로젝트의 주인은 이 ‘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야.”
지금까지 나를 거쳐 간 많은 수락을 생각해 보면, 나보다 제안해 준 상대방을 믿는 경우가 더 많았다. 저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까, 저 사람이 나를 믿으니까, 나보다 경험 많은 사람의 이야기니까. 그러나 이런 식의 결정으로는 오래갈 수 없었다. ‘왜?’라는 질문의 답에 내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나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자꾸만 달라진다. 그때마다 나한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조금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내 쓸모를 남에게 희생할 게 아니라,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쓸모가 있을지 먼저 생각해야지. 쓸모 있는 것들로 시간을 쌓아가는 내가 결국은 오래오래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ps.
이제는 ‘아유.. 내가 뭐라고’ 같은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겸손과 부정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때 이런 말이 제멋대로 튀어나온다.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자신이 한 땀 한 땀 새겨온 것을 잘 아는 사람은 스스로를 쉽게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에요’보다 ‘고마워요’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진짜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러한 부정이 자신에 대한 부정일 뿐만 아니라,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진심 어린 의견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