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3년짜리 교정을 시작하면서 이가 아파 죽만 먹었던 기간이 있었다. 2주 동안 10키로 가까이 빠졌다. 당시 체육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넌 살이 빠진 게 아니라 근육이 빠진 거야. 지금부터 무조건 운동해야 해. 늙으면 체력 겁나 후달린다~” 하고 말씀하셨지만 나에게 운동은 너무너무 힘든 것이었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후달리는 체력을 가진 20대 후반이 되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체육 선생님의 목소리가 문득 메아리처럼 들릴 때마다 집 근처 하천을 걷거나 가격이 저렴한 헬스장을 기웃거렸다. 지금의 체력은 그때의 기웃거림으로 겨우 얻은 것이다.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느낀 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입사 전부터 좋아하던 브랜드였고, 이곳에서 일한다는 게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즐거웠다. 그런데 종종 잘 지내다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었다. 기분이 별로였다. 나를 제외한 일상은 평소처럼 돌아가는데 나만 녹슨 부품처럼 삐그덕대는 느낌. 그래….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지. 이제는 미룰 수 없겠다 싶어 지도 앱을 켰다.
처음 간 곳은 집과 가까운 요가원이었다. <뉴 본 요가>. 가게 앞에 세워진 나무로 된 입간판 위로 이런 이름이 적혀있었다. 새로 태어날 수 있을까…. 상담하러 가는 내내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걱정은 지금의 삐그덕으로부터 오는 것이었고 설렘은 미래의 건강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상담 선생님은 친절한 분이었지만 끝내 결제는 하지 않았다. ‘요가’에 대해 물었는데 계속해서 답이 ‘필라테스’로 수렴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기구 필라테스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흐음. 새로 태어나긴 글렀나….
며칠 뒤 강릉으로 쉬러 갔던 날. 푹 자고 일어난 이튿날 아침, 문득 헬스가 나으려나 싶었다. 헬스는 그나마 익숙한 운동이니까. 여름만 되면 살 빼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동네 헬스장을 다녀봤고, 운동 좋아하는 친구한테 트레이닝을 받아본 적도 있었다. 실제로 식단을 병행하면서 살이 많이 빠지기도 했다. 여름이 끝나면서 남은 이용권을 트레이너 친구에게 양도하긴 했지만…. 생각을 더 늘리지 말자. 지도를 열어 집 근처 헬스장을 찾아 상담을 예약했다. 상담은 돈이 안 드니까 해볼만 하다.
그리고 지금, 헬스를 다닌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지난여름의 헬스장과 다른 점이라면 PT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과 달리 내가 원하는 게 명확했다. 체력 강화.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상담 질문지에 꼬부랑글씨로 적힌 걸 보며 선생님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좋네요. 너무 좋은 마인드에요.”
“그런가요?”
“네, 저는 회원님들이 단기간에 살을 빼는 것보다 운동을 오래 좋아하셨으면 해서요.”
트레이닝을 받고 싶은 선생님을 생각해 봤냐는 물음에 거기까지 알아보진 못했다고 말했다. 선생님 자신은 리스트에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트레이닝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이제 내 표정이 밝아졌다. 선생님이랑 하고 싶어요. 결제하고 나서 보니 선생님은 헬스장을 운영하는 분이었다.
PT를 처음 받던 날, 러닝머신 같이 익숙한 기구들을 뒤로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 헬스장은 유산소 운동을 하는 3층, 웨이트 운동을 하는 곳이 4층으로 분리되어 있다. 4층으로 올라간 뒤 문을 여는데… 진짜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온통 까만색 혹은 은색의 쇳덩이 기구들로 가득한 곳은 내게 너무 어려운 공간이었다. 모르는 문제로 가득한 시험지 위에 뛰어드는 느낌. 정말 싫다. 무언가를 모른다는 느낌. 그게 싫어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지체 없이 어떤 기구로 나를 안내했다. 여러 번 이름을 들었지만 계속해서 까먹는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허벅지의 바깥이나 안쪽이 이렇게 아파도 되는 건가 싶을 뿐이다. 실제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도 이거다. 이게 맞나요? 이래도 되나요?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죄송한데… 도저히 안되는데요..”
“맞아요. 제가 그럴때까지 시키는 거예요.”
거기서 하나만 더 해봅시다. 그러면 나는 이 악물고 눈 꽉 감고 어떻게든 동작을 완성하려고 용쓴다. 그러면 겨우 동작의 0.3 정도를 해낸다. 오케이- 하고 내려오는 순간 천국이다. 누군가 기분이 좋아지려면 운동을 하면 된다던데, 매 순간 이런 식으로 쉬운 천국을 맛보니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제가 너무… 운동을 못하진… 않나요…?”
사이사이 숨이 차서 헉헉댄다.
“운동을 못한다기 보다는 운동량이 적을 뿐이에요. 하다보면 늘어요.”
“……(끄덕).”
우리는 지금까지 6회 정도 만났다. 정가로 치면 한 회당 7만 7천 원짜리의 만남인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선생님은 시간을 들여서 몸과 근육의 움직임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의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내 움직임이 헛되지 않을거란 걸 매번 알려준다. 어려운 단어를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필요한 단어는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 준다. 가르치는 입장을 내세우지 않고 배우는 자의 입장을 고려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 알려주는데, 그 몫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잘못된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기본기를 정확히 알려주지만 결국 본인의 몸은 본인이 가장 잘 알게 될 것임을 함께 알려준다. 지금은 잘 몰라도 괜찮다고, 여기까지 와서 운동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잘 알고 싶은 의지가 있는 거라고.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거라고 말한다. 지금의 고통과 앞으로의 기쁨 모두 내 몫임을 쉬는 시간 1분을 반복하는 사이사이 말한다.
1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선생님과 MBTI 얘기도 하고, 호주에서 살다 온 얘기도 나눈다. 이것은 운동 초반 10분 정도만 가능한 일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사적인 대화가 없어진다. 자세가 맞나요? 여기 말고 여기에 힘이 들어가는데요. 등을 잡으세요. 아니면 허리가 다쳐요.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간다. 헉헉대면서 운동을 끝내고 다음 PT 약속을 잡는다.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붙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온다. 나아지겠지. 나아질 거야. 다음 날도, 다다음 날까지도 근육통으로 아픈 다리를 붙잡고 눈을 뜬다. 다다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픔이 사라진다. 이는 곧 약속한 PT 시간이 다가왔음을 뜻하는데, 겁이 난다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고통임을, 고통을 통해 아픔의 역치가 높아짐을, 점점 더 나은 체력을 갖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느끼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믿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