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글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인사부터 써봅니다.
더위가 살짝 느껴지던 4월부터, 매 순간 촘촘히 더위가 느껴지는 7월의 마지막 날까지. 제가 예상했던 대로 어찌어찌 무사히 마무리 되어가는 3학기네요. 3개월 사이 약속했던 날을 못 지키던 순간들이 있어 조마조마했어요.
약속했던 발송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저의 숙제로 남았는데, 4학기는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음을 준비할 명분이 생기네요.
4월, 5월, 6월, 7월 여전히 시간을 톺아보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건 아침저녁으로 쓰는 일기입니다. 한 줄을 쓰거나 한 단어를 쓰더라도 꼭 쓰려고 해요.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피곤한 날이 아니면, 잠보다는 일기 쓰는 시간을 선택합니다. 그날만 쓸 수 있는 뭔가가 있더라고요. 쓰다 보면 나도 모르던 게 나오기도 하고요.
그럼, 시간을 한번 찬찬히 짚어보겠습니다.
4월에는 이런 문장이 있네요.
-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꼭 지금의 내가 엄청날 필요는 없다고. 굉장히 대단할 필요도 없다고. 원하는 것을 하고, 주어진 몫에는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즐기고 사랑하는 것. 그게 전부 아닐까.
-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에 대해 너무 시간을 안 준 건 아닐까. 나한테 시간을 주자. 계절을 즐길 수 있도록, 안부를 물을 수 있도록.
5월의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어요.
- 책장 한 칸 좋아하는 작가의 책으로 빼곡히 차 있는 것. 어느새 내가 무언가를.. 진심을 담아 좋아한다는 것. 완전한 타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를 통과시키는 게 기쁘다는 것. 그래서 나도, 나의 이야기에 나의 글에 통과하는 사람을 보며 두 배로 기쁘다. 이런 기쁨에 눈물이 난다.
- 더 나아질 세상과 좋아질 미래를, 문제를 해결하고 원인의 뿌리를 뽑으려는 노력을 믿는다. 더 이상 내가 꿈꾸는 걸 허상이고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 나를 자꾸 갉아먹는 건 몇 년 전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복기하고 다시 같은 화살을 쏘는 나 자신이다. (…) 그간 읽은 많은 책이, 만나온 사람들이 그래도 된다고, 괜찮다고 말해줬다. 올해는 좀 더 “잘” 해보자. 나를 믿고.
6월에는 이런 문장이 있고요.
- 그저 객관적으로 보고 싶을 뿐이다. 나한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떤 게 조금 더 나은지. 내가 뭔가를 가리고 못 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분명 나한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나의 말을 듣고 답했던 그의 말 중 내게 도움이 되는 말은 “그놈 미친 새끼네”가 아니라, “네가 그러는 걸 이해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거든. 나는 그때 이렇게 했어, 그랬더니 이렇게 되더라고.” 라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걸… 그저 들어준 게 고마웠다. 에너지가 좋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 그래. 이렇게 하면서 회복하자 조금씩. 더 단단해지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
7월에는 이런 문장을 남겼어요.
최근의 문장들이니 조금 더 적어볼게요.
- 운동은 계속 ‘죽겠구나…!’를 견뎌내는 일인가? 아주 약간만 힘들 순 없나? 내가 버틸 수 있는 정도면 힘든 게 아닌 걸까? 흐음…
-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어떻게 부지런하고 바삐 사는 걸까. 요즘 나는 우스갯소리로 ‘쉬는 것’에 집중한다고 말하는데 곱씹을수록 그렇다. 내 몸 불편하지 않게 쉬는 것. 누구보다 나를 제일로 챙겨주는 것. 그게 안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심지어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변할 수 있다. (…) 사는 게 먼저다. 사는 게.
- 몸이 힘들면 머리가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한다. 그래서 역치를 높이고 싶었다. 힘든 것의 역치를.
-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게 있다. 다 이해하는 척하지 말 것. 내가 100% 옳다고 생각하지 말 것. 이건 진~~짜 맞는데. 싶은 것도 1%의 여지를 남겨둘 것. 언제든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음을 인지할 것.
- 나에게 모든 건 ‘시도 해 볼 만한 일’이다.
- 마음의 세탁이 안 되는 기분이다. 때가 삐져나와 눈물로 나오는 것 같다. 싫다, 싫어!
- 피로하게 시작했지만 피곤하지 않고 행복했던 하루. 보이는 것에 기뻐하고 들리는 것에 즐거워했던 날. 느끼고 감상했던 날. 이런 시간이 필요했어.
어떠셨나요.
저는 자주 제 일기를 읽어보지만, 문장을 뽑아서 나열한 적은 없어서 새로워요. 그사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제 모습도, 조금씩 바뀌는 모습도 보이네요. 3개월 만에 사람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겠죠. 제가 그걸 목표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제 옆의 책장 구석 아래에는 과거에 쓴 일기들이 책처럼 꽂혀있어요. 읽어보니 똑같더라고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이런 걸까, 저런 걸까.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굳게 마음먹다가 또 무언가를 싫어하고 다시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는 일상의 반복이에요.
신기한 건 그 사이사이에 제가 꿈꿔왔던 것들을 이뤘다는 거예요. 가장 큰 변화는 오랫동안 좋아하던 브랜드에 입사한 거겠죠. 나도 다른 사람처럼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게 무색할 만큼 경제적인 면에서도 안정되었고요.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어요. 꿈꾸는 사람들이 보여요. 그런 사람을 좋아해서 물어봐요. 뭐가 당신을 꿈꾸게 하냐고요. 그 힘이 궁금해요. 저는 묻고 답을 들으면서 에너지를 채워요.
저를 괴롭혔던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사라지더라고요.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반복했던 단어들이 보이지 않아요. 신기해요. 매일 새로운 고민과 걱정이 머릿속을 채우지만 (지금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아지고 있어요. 확실해요. 갈수록 제 모습이 싫지 않거든요. 점점 제가 좋아지고 있어요.
자, 이제 지나간 시간도 돌아봤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다 했으니, 마무리를 지어볼게요.
사실 6월 초중반쯤, 3학기가 끝나면 <월간 진심>을 그만하려고 했어요. 심진 노트 계정도 더 이상 운영하지 않으려 했고요. 이상이 생겨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월간 진심>이 아니더라도, @simzin_note가 아니더라도, 이제 제가 누군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디서 뭘 하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3개월, 11편의 편지를 보내는 동안 99편의 답장이 왔어요. 답장 한 편에 질문이 2개이니, 198개의 답이 온 셈이죠. 정말 많아요. 보통 한 질문에 3-4줄 이상 답을 써주시니까요. 이번 편지를 준비하면서 그걸 다 읽어봤거든요. 몇 번 울고 많이 웃느라 편지가 늦었어요. 너무 많은 마음이 왔다 가서 도무지 뭘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글을 쓰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입말로 뱉어내기에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사람이고요. 신경 쓸 게 너무 많거든요. 제 속도대로 곱씹고 씹고 뱉어내고 다듬어서 나온 것이 <월간 진심>이에요.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의 속도대로 읽어주고 계신 거고요.
저, 진짜로 뭐든 잘하고 싶어 해요. 근데 늘 그렇지는 못해요.
그래도 계속하고 싶어요. 재밌거든요.
느끼고, 생각하고, 의심하고, 풀어보고, 적어보고, 나눠보고, 나눠 받고, 느끼고…
그래서 계속할 거예요. 멈추지 않으려고요.
천천히, 아주아주 천천히 가더라도 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제가 지난번 편지부터 선물을 드린다고 했는데요.
제가 12편을 보내는 동안 소개한 12권의 책 중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책을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저는 늘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은 <월간 진심>을 읽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해요. 그래서 아래 여러분께 궁금한 질문 3가지를 적어두었어요. 질문에 대한 답을 보내주시면, 원하는 책을 선물로 드립니다. 물론 모두에게 드리긴 어렵습니다... 미안합니다! 3학기니까 3분께 드리려고 합니다.
혹시나 선정되지 않더라도 속상해하진 마셔요.
사서 읽어보는 경험이 나쁘지 않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고른 책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