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전에는 부러워하는 내가 너무 싫을 정도로 질투가 심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저렇게 잘할 수 있는 걸까. 재능은 정말 타고나는 걸까….
오늘 오전에 쓰는 사람의 기록과 이야기를 전하는 전시, 소소문구의 ‘아임디깅 2023’ 전시에 다녀왔다. 온통 자신의 일상을 촘촘히 기록하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매료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일러스트레이터 ‘결’ 님.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기록의 형태였다. 노트를 이렇게도 쓴다고? 싶어서 영상까지 찍었다. 집에 오는 길에 찾아보니 인스타툰을 그리고 있는 작가님이었고, 나도 이미 팔로우하고 있었다. 하하. 그런데 만화로 본 그의 모습과 기록으로 본 그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재미를 느낀 포인트였다.
내 모습이 싫을 정도로 질투가 심했던 시절에는 잘한다고 느끼는 것의 초점이 결과물이나 성과에 맞춰져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결과물이라던가, 큰 공모전에 입상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커다란 것들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나를 싫어하고 싶지 않아서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같은 스포츠 선수여도 체급마다 출전하는 경기가 다르듯, 질투를 느끼는 대상과 나의 체급 차이가 있기에 애당초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말이다. 한동안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여기까지 생각했다면, 계속해서 내가 속한 체급에 머물렀을 것이고 같은 체급 안에서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좌절했을 것이다.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좌절하고 슬퍼하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이로인해 초라해지는 내 모습도 싫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생각해 봤다. 가만… 애당초보다 더 애당초,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굳이 체급을 나누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다. 마음이 더 편해졌다. 이러한 생각의 업데이트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잘한다고 느꼈던 포인트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를 수 있었다.
결 작가가 작업 중에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고 어떤 단어를 자주 쓰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며 감탄했다. 그 누구도 슬퍼하거나 초라해지지 않고, 기분이 좋아질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결과라는 게 한순간 나오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최근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과정이 경제의 중심이라 말하는 책 <프로세스 이코노미>가 피드에 자주 오르는 걸 보면 역시 ‘과정의 즐거움’에 동의하거나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얼마 전 유튜브 채널 <딩고>에서 아이유가 연습생 이유림 씨와 대화를 나눈 영상을 보았다. '그래, 잘한다는 건 이런거지.’ 짜릿하게 관통하는 느낌과 위로를 동시에 받았다. 이 대화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 잘하려면 많이 해보는 것 밖에 없겠죠?
- 잘한다는 기준이 너무 애매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 네가 네 것을 찾고 너만의 그것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돼. 내가 좋은 글, 내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냥 그거 좋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러면 나는 그게 잘하는 게 아닌가 싶어.
찰나에 대화를 붙잡고 아주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 나 진짜 잘하고 있구나, 하는 칭찬을 스스로 해주었다. 지난 1호 편지를 보내고, 18편의 편지를 답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중 단 한 명도 “잘한다”는 말 없이 비슷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나는 답장을 바라고 편지를 쓰지 않는다. 내가 이 편지를 쓰는 가장 큰 목적은 글을 쓰고 싶어서다. 글이 되기 위해서는 읽어줄 사람이 필요하기에,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읽는 것’ 단 하나뿐이다. 내가 지난 학기 데이터를 모두 삭제하고, 구독자를 매번 새로 모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메일함에 볼드 처리된 채 읽히지 않고 숫자로만 계속 쌓이는 모습은 쓰는 이도, 읽는 이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
읽어보고 싶다고 응해준 당신, 읽고 나서 마음을 담아 보내준 당신이 있어서 나는 내가 잘하고 있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내 것을 찾아나가는 길에 함께 해주어서, 자신의 것이 아니라 지루할 수 있을 텐데 시간을 들여 읽어주어서, 글을 써 줘서 고맙다고, 계속해서 글을 써달라고 콕 집어 말해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당신들 덕분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 나 또한 언젠가 당신의 ‘덕분’에 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우리는 필히 그런 관계가 될 수 있다. 우선 삶은 스포츠 경기가 아니고, 우리는 프로 선수가 아니어도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