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일기를 쓴 지 한 달이 좀 넘었다. 아침저녁을 꼬박 채웠냐 하면 거짓말일 테고, 아침을 빼먹거나 저녁을 빼먹는 날은 있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뭔가를 적었다. 얼마 전에는 일기를 읽다가 재밌는 부분이나 더 크게 소리치고 싶은 내용을 인스타그램으로 종종 공유하곤 했는데, 이런 답장이 왔다.
“보통 일기에 무슨 내용을 쓰시나요?”
원래 꾸준히 ‘일기’를 쓰던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왜 쓰기 시작했는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아침마다 황선우 & 김하나 작가님이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이하 여둘톡)’를 듣고 있었다. 그날도 듣고 있다가, 두 분이 함께 ‘모닝 페이지’라는 것을 꾸준히 쓰고 있다는 말에 궁금해서 찾아본 게 시작이었다. 간단하게 아침에 일어나 30분,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르는 것을 쓸 뿐인데 너무 좋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이것을 써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건 아침에 쓰는 것은 "무언가를 잡아채는 글쓰기가 아니라, 흘려보내는 글쓰기” 라는 한 문장 덕분이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집에 있는 수많은 노트 중 180도로 쫙쫙 펴지고 매일 봐도 질리지 않을 노트를 골랐다. 거기다 아침에 일어나 30분 정도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썼다. 기상 직후 가볍게 씻고 물 한잔하고 쓰기 시작하면, 꿈을 생생하게 꾼 날에는 꿈 내용이 적혀있는 날도 있었다. (무지 재밌다) 주로 쓰는 것은 아침은 무얼 먹을 것이고, 무얼 입을 것이며, 춥거나 덥다는 등 순간 느껴지는 감각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어떤 아침에는 그저 일어났을 뿐인데 무언가 찝-찝하고, 마음이 불편하며, 오늘 하루가 걱정되고, 이러한 느낌이 총체적으로 모여 ‘불안’과 같은 이름을 띠고 글자로 적히곤 했다. 일기를 돌아보니 이런 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내가 잘 못하는 일을 해야 하는 날에 쓴 일기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글을 써야 하는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르게 뾰족한 독자에게 읽혀야 하는 글인 경우다. 이때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커서 마감 1~2일 전부터 걱정의 파도가 넘실넘실 마음으로 흘러온다. 결국 마감 당일 눈을 뜨면, 철썩철썩 대차게 부딪히는 불안을 일기에 옮겨 적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적어버린 한 문장이 있었다.
“난 마음에 켕기는 것 없이 살고 싶다.”
그제야 알았다. 눈뜨자마자 나를 괴롭히던 건, 켕기는 것들이란걸. 무언가 찝-찝하고, 마음이 불편하며, 오늘 하루가 걱정되는 듯한 느낌. 이것을 한 단어로 설명하라면 ‘켕긴다’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이 뜻이 맞나 싶어 사전에 검색해봤다.
[켕기다]
1. (동사)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다.
2. (동사) 마음속으로 겁이 나고 탈이 날까 불안해하다.
3. (동사) 마주 버티다.
내가 느낀 감정은 2번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번 뜻은 켕긴다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조금 더 찾아봤다. 곧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이라는 칼럼을 발견했고, 글의 제목은 <‘켕긴다’ 는 마음을 다잡을 때도 쓰죠>. 글 속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화살을 쏠 때 시위에 화살을 걸어 힘껏 당기는데, 이걸 ‘켕긴다’고 한다. ‘켕기다’는 본래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연줄을 힘껏 당겨 단단히 켕기는 것. 잔뜩 긴장을 하면 목줄기가 뻣뻣하게 켕기기도 한다. 여기서 쓰임새가 넓어져 ‘마음속으로 찜찜한 게 탈이 날까 봐 불안스럽다’란 뜻으로도 쓰이게 됐다. ‘거짓말한 게 켕겨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할 때의 그 ‘켕기다’다. 지금은 이 말을 이렇게 더 많이 쓴다.⌟
켕기다의 본래 뜻을 알고 나니,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더 선명해졌다. 나는 잘 못하는 일 앞에서 늘 그런 모습이다. 잔뜩 긴장하고, 여유라고는 없으며, 자연스럽지 않고 불편한 자세. 시위에 화살을 걸어 힘껏 당겼으면 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을, 그러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팔은 점점 떨리고 과녁을 조준하던 초점도 흐려질 것이다. 그런 상태로 무얼 잘할 수 있겠나…
이때 덜덜 떨리는 팔을 붙잡아 살포시 내려, 쥐고 있던 화살을 펜으로 바꿔주는 것이 아침에 쓰는 일기였던 것 같다. 차분히 살펴보자고. 지금 잘 못하는 일은 나로선 도무지 어찌할 수 없으니까. 100m 달리기를 18초에 뛰던 사람이,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10초 만에 뛸 수 있는 기적 같은 것은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잘 생각해 보면 그건 기적이 아니라 요행일지도 모르겠다. 오직 ‘운’으로 잠시 왔다 가는 것, 그건 진짜 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아침에 쓰는 일기가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밤에도 쓰기 시작했다. 아침이 시작의 감정이라면, 밤은 끝의 감정이라 둘을 합치면 적당히 하루를 회고하는 셈이다. 신기한 점은 아침 일기에 적혀있던 불안이 밤의 일기에선 어찌어찌 해결되어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한가지 비결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찌어찌’의 과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글로 풀어내면, 다음엔 비슷한 긴장 앞에서 조금은 초연해진다. 내가 잘 못하는 것, 어떻게든 해결한 것,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은 내가 아니면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 분명히 느꼈던 의심과 불안, 그사이 수많은 도움과 해결했을 때의 뿌듯함과 기쁨을 기억해 줘야 한다.
그렇다면 기억은 어떻게 하는가, 어떤 형태로든 기록하는 것이다. 비결은 이것뿐이다. 부지런히 쌓아온 기억이 나를 믿는 마음으로 바뀌며, 비로소 어떤 의심도 없이 활을 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