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혼자 남겨진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황무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꽃이 만개한 풀밭에, 울창한 숲속에서 시간을 즐기는 혼자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실제로 풀밭에 서 있어 본 경험은 있어도, 황무지 위에 서 있어 본 적은 없는데 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없는 삶은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내 곁에 엄청 재밌거나 좋은 사람들만 있는 줄 알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정확히는 내 곁의 모두가 항상 유머러스한 것은 아니다. 늘 좋은 점으로만 채워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말이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이 무언가를 두고 논의하기 전에 먼저 ‘정의’를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기적을 만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기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세상을 상상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황무지를 떠올릴 정도로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에게 묻는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회사에 출근하면 하얀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간식 두 개가 보인다. 이런 날이 꽤 자주 있다. 처음엔 누가 책상을 착각해서 잘못 놓고 갔나 싶어 옆자리 동료에게 물어보니, 여행을 다녀온 팀원이 회사의 모든 동료에게 나눠줄 양만큼의 간식을 사 와서 나눠줬다는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맛도 다르게 두 개씩이나! 특정한 사람만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누구나 항상 초콜릿을, 사탕을, 도넛을, 비타민을 책상에 가지런히 놓고 간다.
자신이 보며 웃고 울었던 콘텐츠를 틈날 때마다 보내주는 사람도 떠오른다. "심진도 보면 좋아할 거예요. 진-짜 영감이에요!” 하며 건넨다. 어느 날은 아무 말 없이 링크만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읽고, 보고, 들은 것을 나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면 영감을 나눠준 그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구태여 묻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풀어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서점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사람은, 작은 손짓을 계속하며 공간의 디테일과 만든 사람에 대해 풀어냈다. 그 모습이 참 귀하다고 느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는 표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김없이 내 속에서도 몽글몽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거나 행동하고 싶어진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너도 좋아할 것 같으니까, 다음에 함께 가보자고.
이제 나에게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좋은 걸 좋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겠다. 맛있는 걸 뺏기기 싫어 혼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렇게나 맛있는 걸 너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남기게 될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엄청 맛있는 디저트를 동거인을 위해 남기며 생각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뿌듯해지는 사람이다.
우리는 혼자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밥을 짓고, 근사한 요리도 만들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고, 아주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어디서든 음악을 즐기고 산책도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많은 것을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이 아주 예쁜 풀밭에 울창한 숲이라고 하더라도 혼자라면, 나는 아무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웃으며 말하고, 간식을 나눠 먹고, 영감이다 소리치는 사람들이 가득한 마른 황무지를 더 좋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