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잘하잖아.”
지금까지 이 한마디가 마음에 가까이 와닿은 적이 없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아주 많은 사람에게도 종종 들어왔지만 어쩐지 그 말이 가벼운 위로처럼 들렸다. 지나가면 다 괜찮아져, 시간이 약이야 같은 것처럼. 뭐든 완벽히 해내는 사람은 없다는 걸 잘 알고있다. 그래 그렇지 넘어가는 식의 이해가 아니라, 정말로 잘 알고 있다. 과학으로 뒷받침한 뇌과학자의 이야기도 듣고, 오래 살아온 철학자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곁에서 나를 오래 본 친구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완벽함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기 때문에 무엇이 사실인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잘한다”는 말은 여전히 어색하다.
얼마 전 회사 동료 D와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한 시간 가까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대화의 전부는 “나 잘한다.”는 것이었다. 각자 자기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는 D로부터 추천받은 말이었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충분히 그러고 있으니까. 나는 부정하지 않았지만 긍정하기도 어려웠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내가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나서도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그 말이 나를 자꾸 붙잡았다.
“내가 잘해버려 주마!”
…나는 왜 이 말을 잘 못하겠지?
다음 날 아침에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문득 D가 건네준 이야기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어 카톡을 보냈다. <자화자찬, 경거망동!> 보내는 김에 나도 다시 들었다. 문득 김하나 작가님이 들려주신 에피소드가 인상 깊어 메모해 두었다.
발레 공연을 보다가 발레리나가 꽈당- 넘어진 거예요. 잠깐 삐끗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 크게 넘어져서 모두가 아아- 하는 탄성을 내지를 만큼요. 그런데 단지 평지를 걷는 우리도 넘어지지 않나요? 큰 동작과 많은 점프를 하는 발레리나가 어떻게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물론 실수 없이 잘 해내고 싶겠지만, 정말 삶에 실수가 없을 수 있나요? 관객이 원하는 건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발레이지, 실수 없는 발레가 아니지 않나요?
문득 D가 내게 들려주는 ‘잘한다’의 기준과 내가 생각하는 ‘잘한다’의 기준이 다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에 잘하는 사람은 무얼 해도 평균 이상, 완승 무패에 가까우며, 높은 타율을 자랑하는 사람들. 어떤 일을 해도 실수 없이 깔끔하게 해내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잘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게 처음이라 무얼 해도 평균이거나 실수부터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데, 김하나 작가님은 덧붙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실수를 줄이는 것은 목표가 됩니다만, 정말로 실수를 원하지 않는다면 발레를 안 하면 됩니다. 그러면 실수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자화자찬하고, 경거망동합시다. 경거망동하라는 것은 패가망신하라는 것이 아니고, 잃을 게 있는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나빠지는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까지도 끌어안자고 말하는 거예요. 크게 넘어져도 털고 일어나서 턴을 하는 발레리나처럼. 그편이 좀 더 흥이 나지 않을까요?
잘한다는 말 이면에는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말이 따라붙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에겐 부담처럼 느껴졌던거겠지. 그렇다면 D가 생각하는 ‘잘한다’는 무엇인지 궁금했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D는 연차를 냈고, 또 다른 동료 N도 함께 만나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서로에게 꽃을 선물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밥을 먹고, 또 한 번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D는 말했다. 그저 꾸준히 하는 것과,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데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잘하는 것이라고. 이거 사실이잖아요, 잘하고 있는 거니까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시끄러운 카페 음악 속에서도 잔잔한 힘을 가진 D의 목소리. 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떤 음악도 없이 집에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리며 그간 생각했던 ‘잘한다’ 뜻을 정정했다. 실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가 있어도 계속하는 사람. 실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꾸준히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나는 잘하는 사람이 맞다. 지금은 잘 못해도, 계속하고 싶으니까. 조금 부족해도, 더 잘하고 싶으니까. 이유를 잘 모른 채로 스스로를 부정하며 지내다가 최근에서야 또박또박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흐릿했던 것들에 윤곽이 잡혀간다.
“민폐 끼치고 수습하며 사는 게 인생이에요.”
김하나 작가님이 웃으며 건넨 말도 윤곽을 잡아주는 문장 중 하나. 스스로 말을 많이 하거나 많은 글을 쓰기보다, 들으며 비우고 그 자리를 새롭게 채우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여러모로 고마운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