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간 진심>을 쉬면서, 평소라면 글을 쓰고 있었을 밤에 극장에서 혼자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을 봤어요. *스포일러는 없으니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영화를 재밌게 보고 나온 뒤 먼저 찾아본 건 시작할 때 흘러나오는 곡이었습니다. 라디오 헤드의 ‘Creep’이라는 곡인데요. 영화가 끝난 밤 11시 집으로 걸어가면서도, 집에 도착해서 일기를 쓰면서도, 자기 전까지 이어폰으로 몇 번 더, 다음 날 눈뜨자마자 바로, 출근하면서도, 일하다 잠이 올 때도, 퇴근하면서도, 그렇게 며칠을 계속 그것만 들었습니다. 다른 가수가 부른 버전도 들으면서, 가사를 하나하나 읽으면서요. 오죽하면 같이 사는 친구가 “진~~짜 좋았나 보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이 곡을 계속 찾는 이유를 생각해봤는데요. 굳이 말하자면 구구절절할 수 있겠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좋았으니까요. 그냥 좋았습니다.
아아- 속이 다 시원하네요. 실은 제가 ‘그냥’ 이라는 말을 못 견디는 편에 속합니다. ‘진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니 말 다 했죠. 무언가에 진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면, 그것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나만이 말할 수 있는 ‘이유’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유가 없으면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우니까요. 저는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알 수 있는 방법같은 건 모르거든요. 행동 심리학을 배우지도 않았으니, 행동을 보고 추측할 수도 없고요. 그 역시도 결국 추측일 뿐, 사실이 아니니까요. 저는 상대방을 이해하기가 어려울수록 세상살이도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빠삭하게 아는 것만으로 세상이 저절로 굴러가지는 않으니까요.
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이전 시리즈(1, 2편)를 보면서 “아이 엠 그루트(I am Groot)” 라는 말을 반복하는 그루트를 참 좋아했습니다. 자신의 감정 표현을 같은 대사만으로 반복하는 그루트를 왜 좋아했던 걸까요. 평소에 나무를 참 좋아하긴 하지만, 모습이 나무여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눈망울이 귀여워서일까요? 또는 다양한 표정, 몸짓의 변화를 통해 그의 감정을 파악해 보는 재미 때문일까요? 예를 들면 “I AM!!!! GROOT!!!!!” 하고 얼굴을 찌푸리고 큰소리를 치는 걸 보며 ‘화났구나’ 느끼는 것이죠.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유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하고 있는지요.
그런데, ‘그냥’ 혹은 ‘그저’ 좋은 것들이 있으면 좀 어떤가요. 이 노래의 가사가 이러해서, 영화의 흐름과 줄거리에 잘 어울려서 같은 이유를 나열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남들은 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다 저의 개인적인 배경까지 갖다 붙이면 보다 진실에 가깝게 들리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것이 정말로 사실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는 건 아닙니다. 글만 읽어서는 ‘사실’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글이라는 건 어떤 근거도 없이 그저 말을 풀어 활자로 써내는 것일 뿐이니까요. 반면 거짓말 탐지기로 ‘사랑하냐, 안 사랑하냐’를 묻고 전기 신호가 오는 것으로 사실을 구분하는 것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사람은 계속해서 흐르고 바뀌는 ‘상태’에 가깝다고 생각해서요.
제가 더 이상 ‘진심’을 좋아하지 않는 거냐 물으신다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무언가에 몰입하고 집중하며 나만의 이유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짜릿한 기쁨이라고 생각해요. 눈이 반짝이고, 피로가 사라지고, 몸에 열이 나며 계속 흐르는 상태를 이어갈 수 있겠죠. 저에겐 이것이 살아가는 동력 중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다만 남들에게 이해와 사랑을 받기 위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유를 캐묻는 일은 줄이고, 지금은 그저 좋다고 느끼는 순간을 늘리고 싶습니다. 그러네요. 이 편지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일단 나 좀 잘살아 보겠다는 말이랍니다. 얼마 전 일기를 쓰며 살아가는 데 제게 있어 중요한 건 딱 2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는 나 잘 사는 것, 두 번째는 함께 잘 사는 것. 우선순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먼저 제가 잘 살아야죠. 그런데 나만 잘 사는 건 소용이 없으니, 다른 사람과도 함께 잘 살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자는 건 아닙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죽기 전까지 저는 타인과 함께 지낼 것이고, 또 그러고 싶기 때문에 같이 살아갈 세상도 잘 돌봐야겠다고 다짐했던 밤이 있었습니다.
<월간 진심>이라는 이름 아래, 진심이 아닌 내용을 보낼 일은 없을 겁니다. 여기서 쓰고 보내는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고, 진심이고, 진심일 거예요. 그렇게 쓸 수 있는 이유는 여러분이 ‘진실’을 알기 위해 <월간 진심>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쓰기 때문입니다. 제가 쓰는 힘도, 여러분이 읽는 힘도 여기서 출발하는 거 아닐까요. 진실보다는 진심을 헤아려 보기 위해서요. 사실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저 사람을 믿고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읽고 쓰기. 각자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고 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 제가 <월간 진심>을 통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지난 7호와 함께 한 주 쉬어가겠다 메일을 보낸 뒤, 어떤 때보다 많은 답장을 받았습니다. 답장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분도, 늘 답장을 보내주셨던 분도, 오픈율 100%를 유지하고 있던 분도 보내주셨더군요. 고맙습니다.
한 주 동안 잘 쉬었는가 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직도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다니 절망했던 한 주이기도 했고요. 이렇게 혼란한 사이 깨달은 사실도 있어 기뻤던 한 주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라고 배짱이 조금은 생겼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즐겁게 하던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고,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어쩌면 예상했지만 두려워서 눈만 감고 있던 일도 일어났습니다. 새벽까지 잠이 안 오는 날이 있었고, 배가 찢어질 만큼 웃으며 재밌게 놀던 날도 있었습니다. 밥 먹으면서 챙겨볼 유튜브 채널이 생겼고, 오래전부터 재밌게 봤던 유튜브 채널도 여전히 재밌더군요. 책이 무진장 졸린 날도 있고, 서점에서 흥미로운 책을 골라 읽을 생각에 설레던 날도 있고요.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새로 먹어본 메뉴는 맛있었습니다.
내일은 요가 수업을 등록하러 갑니다. 앞으로 조금씩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계신 자리에서 그저 좋은 날도, 억~수로 좋아서 뭐든지 말하고 싶은 날도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래오래 봅시다. 저는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
2023/06/13
제 자리에서, 심진 드림 🌳